㈜코리아포스트 김정호 인도네시아 지국장 임명

19895년도 창간한 ㈜코리아포스트는 3개의 영어뉴스 매체와 2개의 한국 뉴스 매체를 발행한 코리아포트는 최근 김정호 씨를 인도네시아 현지 지국장으로 임명 했습니다.
다음은 김정호 인도네시아 지국장 개인이력입니다.  제 이름은 정호(본명)와 김(성)입니다. 저의 열정은 “데일리 플래너”라는 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김정호 인도네시아 지국장으로 선임
김정호 인도네시아 지국장으로 선임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6년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 교육을 위해 1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곳 미국에서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만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을 좋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의 차이와 다양성을 배우고 스스로를 점검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듣고 사람들과 사실을 공유하면 향상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좋은 경쟁자가 좋은 연설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2018 평창 올림픽에서 김정호(오른쪽)과 USOC 래리프롭스트위원장과 함께
2018 평창 올림픽에서 김정호(오른쪽)과 USOC 래리프롭스트위원장과 함께

사실을 찾는 사람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항상 “팩트시커”라고 불렸습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의 리뷰를 먼저 읽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숨어 있는 사실과 진실을 찾아 확인하는 것입니다. 저는 보통 경쟁사 3사의 상품평을 확인하고 비교 한 후 구매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구매시에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 리뷰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품 리뷰는 제품의 실제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을 의미 할 수 있습니다. 

람풍에서 관세청장과 직원들과 함게 코리아포스트 인도네시아 지국장 김정호 (왼쪽에서 세번째)
람풍에서 관세청장과 직원들과 함게 코리아포스트 인도네시아 지국장 김정호 (왼쪽에서 세번째)

도전자
2018년 11월에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자카르타에 정착했습니다. 제직장은 수마트라 서에 있으며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45분 거리에 있습니다. 매일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람풍”이라는 직장에 머물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번은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불도저는 첫날 저를 환영 했었습니다. 혼자 공장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불도저 그대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건물 디자인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A4용지와 20cm 자, 연필로 직접 그려야 했습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전문건설 업체에 의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건설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20명의 멋진 동료들과 함께 했습니다. 땅을 마련하고 공장 사무실을 짓는 것을 직접 했습니다. 13시간의 자동차 운전 끝에 건물에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시공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물의 원자재를 선택하는 가장 싼 것을 찾는 것은 저에게 시간을 투자하라고 요구 했습니다. 
공장을 짓기 위한 땀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건설 예산에서 37%를 절약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움과 이슈를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코리아포스트 미디어에 합류하게 된 것은 제 경험과 능력으로 배운 열정을 보여 줄 수 있는 첫번째 무대입니다. 
게다가 코리아 포스트는 인도네시아 상황과 이슈를 한국에 알릴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김정호(오른쪽)와 인도네시아 INDOPLAS2016 전시회 WAKENI담당자와 함께
김정호(오른쪽)와 인도네시아 INDOPLAS2016 전시회 WAKENI담당자와 함께

내인생에서 잊지못할 경험
제 첫 직업은 TEAM USA(미국팀)선수들과 그 가족들의 통역가였습니다. 평창 올림픽 때 공항에서 평창까지는 선수들이 버스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서 마이크를 잡고 다음 휴게소를 알려주고 평창으로 가는 길에 한국의 전통음식과 맛집을 소개 해 드렸습니다. 
한 운동 선수가 저에게 TEAM USA에서 일할 것을 추천했고 감사하게도 미국 올림픽 위원회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의 새로운 직업은 USOC와 선수들을 위한 차량파견 및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25명의 운전자와 34개의 차량을 관리하면서 저를 체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시간 관리가 전부였습니다. 운전자의 몸 상태를 하나하나 챙기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 이었다. 이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탓에 TEAM USA는 회의와 행사에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USCO 회원 중 한명이 USCO에서만 일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저는 USOC 의장인 Mr.Larry Drobst의 비서 보좌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 행사의 일원으로 팀에서 의사소통하고 인정받는 경험은 제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끈기를 줄 기회였습니다. 

코리아포스트 인도네시아 지국장의 가족들과함께, '바틱'이라는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코리아포스트 인도네시아 지국장의 가족들과함께, '바틱'이라는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코리아포스트에 기여 할 수 있는 방법
한국에는 아직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사람과 기업이 많습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지원 하기에 여전히 많은 이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코리아포스트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기업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홍보 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양국 모두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하는 일
저는 현재 한국, 중동 인도네시아 등에 건축용 합판을 제작하여 판매 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제조공장 이기 때문에 목재 통나무와 접착제와 같은 모든 원료를 일상작업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가장 저렴하지만 좋은 품질을 찾는 것이 모든 것을 시작하는 첫 번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도 제 일의 일부 입니다. 
매주 온라인 미팅을 주선하고 바이어의 판매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공유 합니다. 미국에서 보낸 1년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국제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달리 세계 최강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비즈니스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경험 했습니다. 
주에서 1년을 보낸 후 나는 2년 동안 군에 입대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한국의 새로운 대학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과의 대학생활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세계를 대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송나라 부회장
송나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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