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3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셰익스피어 비극, 노자 ‘물(水)의 철학’ 입고 창극으로 태어나 - 초연 객석점유율 99% 기록의 화제작, 2년 만에 돌아와 ◈ 정영두·배삼식·한승석·정재일, 각 분야 거장이 빚어낸 걸작 - 20톤 물 채운 무대 위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그려내◈ 30대 초반의 김준수‧유태평양, 노역의 리어와 글로스터 완벽 소화 - 비극적인 이야기와 한 서린 우리 소리, 최상의 조화 이뤄 ◈ 오는 10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 바비컨센터 공연 예정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은 창극 <리어>를 3월 29일(금)부터 4월 7일(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창극화한 작품으로, 2022년 초연 당시 서양 고전을 우리 언어와 소리로 참신하게 재창조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무용⸱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정영두가 연출과 안무를, 한국적 말맛을 살리는데 탁월한 극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맡았다. 음악은 창극 <귀토><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서 탄탄한 소리의 짜임새를 보여준 한승석이 작창하고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다.

국립창극단 <리어>는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2막 20장에 걸쳐 그려낸다. 창극 극본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단순히 각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맛을 살려 대본을 새롭게 썼다. 원작을 보면서 ‘천지불인(天地不仁, 세상은 어질지 않다)’이라는 노자의 말을 떠올린 배 작가는 삶의 비극과 인간 본성에 대한 원작의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불리는 노자 사상과 엮었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정영두는 현대무용 안무가로 활약해온 자신의 특기를 살려 신체의 움직임만으로도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동선과 춤을 구성했다.

초연 당시, ‘셰익스피어 비극과 창의 한 서린 울부짖음이 최상의 조화를 빚어냈다’고 호평받은 창극 <리어>의 음악은 한승석과 정재일이 완성했다. 작창가 한승석은 증오‧광기‧파멸 등 비극적인 정서를 담은 무게감 있는 소리를 선보이면서도 ‘장기타령’, 서도민요 중 ‘배치기’ ‘청사초롱’ ‘투전풀이’ 등 대표적인 경기민요를 차용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작품 분위기에 활기를 더했다. 작곡을 맡은 정재일은 앰비언트 사운드 등의 현대적인 음향과 서양적인 화성을 결합한 음악으로 판소리 고유의 시김새와 선율의 독특함을 증폭시켰다. 특히, 1막 후반부 증오와 광기, 파멸의 소용돌이 속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작품의 백미다.

물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 극본에 맞춰 무대도 자연스럽게 ‘물’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은 무대에 총 20t 물을 채워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의 변화로 작품의 심상과 인물 내면을 표현했다. 물이 잔잔하고 고요할 때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태풍이 불 듯 출렁일 때는 휘청거리는 삶의 형상처럼 작품의 정서를 투영한다. 변화무쌍한 물의 속성을 활용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15cm 높이의 물을 헤치며 걷거나 뛰고, 넘어져 허우적거린다. 등장인물이 온몸으로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사방으로 튀고 흩어지는 물이 감정을 배가시키고, 극 후반부 왕국을 놓고 벌어지는 수상전투 장면에서는 천둥과 뇌우를 표현한 조명이 어우러져 비장미와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물을 채운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리어왕과 그의 신하 글로스터 백작 역을 맡아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노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두 배우는 더욱 농익은 소리와 깊어진 연기로 분노와 회한, 원망과 자책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비극을 섬세하게 표현할 예정이다. 국립창극단의 ‘작은 거인’ 민은경은 막내딸 코딜리어와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으로 극과 극의 매력을 펼친다. 명료한 역할 분석과 무대 위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소연이 첫째 딸 거너릴을, 호소력 짙은 소리를 지닌 왕윤정이 둘째 딸 리건을 연기한다. 이외에도 에드거 역의 이광복, 에드먼드 역의 김수인 등 열다섯 명의 소리꾼이 극한의 에너지와 기량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한편, 창극 <리어>는 오는 10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의 바비칸센터에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예매·문의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 또는 전화(02-2280-4114)

변화무쌍한 물의 세계 위에 흐르는 거대한 비극

창극 <리어>의 무대디자인은 제31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무대미술가 이태섭이 맡았다. 이태섭은 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극본을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무대에 총 20t의 물을 채웠다. 극이 시작되면 폭 14m와 깊이 9.6m 크기의 무대에 가득찬 물이 빠져나가면서 대지를 닮은 사방 10미터의 넓은 단이 서서히 드러난다. 단은 흔들리거나 기울어지고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면서 불안정한 인물의 내면을 대변하고, 무대 위 물은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의 변화를 통해 극의 흐름을 담아낸다. 제작진은 물이 빠지고 채워지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수차례 테스트를 거쳤다. 이태섭 디자이너는 “물이 흔들리고 반사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물을 튀기기도 하면서 역동성과 생동감을 끌어낸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창극 <패왕별희>에서 감각적인 조명디자인을 선보인 조명디자이너 마선영, 연극·무용·오페라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의상디자이너 정민선, 분장디자이너 정지호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자연의 질감과 빛으로 구현하며 작품에 힘을 싣는다. 조명은 물의 순환에서 영감을 얻어 폭풍우⸱먹구름⸱석양과 같이 물처럼 변화무쌍한 하늘의 이미지를 빛으로 표현한다. 의상디자이너 정민선은 배역의 서사를 표현하기보다는 각 인물이 무대 일부로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느껴질 수 있도록 무대와 통일된 자연적인 질감과 색감을 사용해 의상을 디자인했다.

열다섯 명의 소리꾼이 뿜어내는 극한의 에너지와 기량

제각각의 욕망 속에서 흔들리는 인물 그려

창극 <리어>는 비단 주인공 리어의 이야기만이 아닌, 욕망의 모양과 방향이 모두 제각각인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시선을 보낸다. 단순한 선악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등장인물 각자가 정당한 욕망을 성취하려 애쓰는 모습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권력욕을 놓지 못하는 리어부터 시기 질투에 휩싸인 리어의 두 딸 거너릴과 리건, 두 눈을 뽑힌 뒤에야 진실을 이해하는 글로스터, 음모로 지위와 권세를 쟁취하는 서자 에드먼드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을 도덕적 잣대로 재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보여준다.

무대 위 총 15명의 배우들은 각자의 생을 살아내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인물을 그려낸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리어왕이 노배우의 역할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을 깼다. 91년생소리꾼 김준수가 분노와 회한으로 미쳐버린 늙은 왕 리어를 연기한다.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또 다른 인물 글로스터 역에도 92년생 유태평양이 캐스팅됐다. 두 배우는 모두 창극‧마당놀이‧뮤지컬‧TV프로그램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탁월한 연기력과 소리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나이 듦’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분노와 회한, 원망과 자책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비극을 섬세하게 표현할 예정이다. 두 배우는 밀도 높은 감정선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저런 상황이라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정영두 연출가는 “관객이 배우의 나이를 잊고 인물 너머의 심리에 몰입할 수 있게 작품을 끌고 갈 역량이 충분하다고 봤다”라며 두 배우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작은 거인’ 민은경은 막내 딸 코딜리어와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 연기를 펼치며 극과 극 매력을 선보인다. 명료한 역할 분석과 무대 위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소연이 첫째 딸 거너릴을 맡았으며, 호소력 짙은 소리를 지닌 왕윤정이 둘째 딸 리건을 연기한다. 이 외에도 에드거 역의 이광복, 에드먼드 역의 김수인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다채로운 면면과 조화로운 호흡을 엿볼 수 있다. 소리꾼 15인의 합창으로 막을 내리는 창극 <리어>는 ‘이 고요를 위하여, 적막을 위하여, 그 모든 소란이 필요했던가. 보라, 저 하늘가 흐르는 구름의 묘비(墓碑)’라는 마지막 노랫말처럼 깊은 사유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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